현대 기호학의 아버지, 페르디낭 드 소쉬르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가 왜 현대 기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현대 기호학의 아버지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누구인가?
소쉬르로 불리는 현대 기호학의 아버지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1857년 11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자연과학을 공부한 학자 집안으로 할아버지는 제네바 대학교의 지리학, 광물학 교수였으며 아버지 또한 지질학자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탐험하다가 스위스로 귀국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쉬르는 어릴 때부터 학자처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고 부모님도 그에게 최고의 가정교사를 붙여줬습니다. 이 가정교사는 ‘선사언어학(언어학적 고생물학 paléontologie linguistique, linguistic palaeontology)’의 창시자로 언어학, 철학, 민족학으로 유명한 픽테(Pictet, A)였습니다.
소쉬르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픽테의 영향으로 자연과학 집안에서 태어난 소쉬르는 언어학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14-15세에 당시 그가 알고 있던 세 가지 언어인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단어를 소수의 어근으로 줄이는 에세이(Essai pour réduire les mots du Grec, du Latin & de l’Allemand à un petit nombre de raciness)를 썼습니다. 그는 조음 기관의 특징에 따라 자음수를 그룹화했습니다(p, b, f, v = P; t, d, s, z = T 등등). 이 방법을 통해 얻은 모음과 자음의 관념(abstractions)은 12개의 3중 조합(KAK, KAT, KAP, TAT, TAP 등)이었습니다. 소쉬르는 이를 원초적 어근(proto-root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방법론은 6년 후 그의 연구, 논고(인구어에 있어서의 원시 모음체계론)를 위한 원시 인도 유럽어 모음을 재구성하는 복잡한 논증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소쉬르는 이 에세이를 픽테에게 보냈고 픽테는 그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해볼 것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소쉬르는 수업 중에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의 글을 읽는 동안 그리스어 문법의 예외 중 하나인 복수 3인칭의 한 형태를 보았습니다. 이오니아 방언이기도 했던 이 단어(τετχατα: tetakhatai)를 통해 그는 그리스어 선사의 명비음(鳴鼻音)/비공명음(nasalis sonans)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873년부터 그는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소쉬르의 해당 발견 3년 후에 당시 인구어학의 최고 권위자인 부르크만(Brugmann, K.) 역시 명비음(鳴鼻音)/비공명음(nasalis sonans)을 발견하여 발표하게 됩니다.
제네바 대학교에 입학한 소쉬르는 부모의 권고로 물리학과 화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적성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앞서 언급한 논문인 ‘인도유럽어족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문(Mémoire sur le systè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éennes)‘을 석사논문으로 쓰게 됩니다. 이 논문을 통해 그는 인구어학계의 주요 연구자로 평가받게 되었지만 당시 인구어학을 전공하던 동료들은 물론 당시 학계를 주름잡던 독일의 주요 학자들에게도 격렬한 비판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박사 과정에서도 산스크리트어에 대하여 연구하여 ‘산스크리트에 있어서 절대 속격에 관하여(De l’emploi du génetif absolu en Sanskrit)’를 박사 학위 논문으로 썼으며 심사위원들로부터 최우수등급을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에서 언어학계의 대부였던 브레알(Bréal, Michel)의 수업을 소르본대학교(Sorbonne University)에서 한 학기 동안 청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학기가 끝난 후 브레알은 소쉬르에게 강의를 맡겨 버립니다. 그때 소쉬르의 나이 24세였습니다.
일반언어학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10년 동안 소르본대학교에서 강의한 소쉬는 1891년 제네브로 돌아와 제네브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일반언어학’ 강의를 소쉬르 사후 1916년에 제자인 샤를 바이(Bally, Charles), 알베르 세슈에(Sechehaye, Albert)가 수강생들의 강의 노트와 확인 가능한 소쉬르의 개인 기록을 편집하여 출간했습니다. 이 일반언어학강의에서 말하는 것이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며 이 강의는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총 3학기 간 이루어졌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개념
구조주의 언어학이 시작된 20세기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와 일반화를 통해 불변하는 특징을 찾는 것이 중요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어학에서도 구조주의는 일련의 자료와 사실을 체계화하여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의 자료들을 개별적으로 탐구하던 기존의 언어학 관점을 벗어나 ‘체계‘로서의 언어를 탐구했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주요 개념
공시태(synchronie): 변화가 정지 상태에 있는 어떤 한 시기의 언어 상태.
통시태(diachronie):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
– 공시적 언어연구는 정지한 어떤 시기의 언어에 대한 연구이며 통시적 언어연구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언어의 변천사 및 연속성에 대한 연구입니다.
랑그(langue): 공시적인 측면에서 관찰한 언어.
파롤(parole): 랑그(langue)에 대비되는 개념.
랑가주(langage):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이 둘을 합친 것.
– 랑그는 사회적인 제도로 언어의 체계이며 개인이 바꿀 수 없습니다. 파롤은 말을 하는 등 언어를 실현하는 행위입니다. 랑그는 내적 체계를 지니며 동질적이지만 파롤은 개인적이며 이질적입니다.
랑그는 기호로 이루어진 체계입니다. 그리고 그 기호는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 표시하는 것.
기의(시니피에, signifié): 표시되는 것.
– 기표는 소리나 형태 등 물리적인 것이며 기의는 개념입니다.
기호는 개념(시니피에)와 청각 영상(시니피앙)의 결합으로 의미작용합니다. 이때 이 둘의 관계는 자의적입니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어떠한 필연적인 관계도 없지만 사회적 규약으로 결정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인이 임의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변화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호가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호는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웃하는 다른 요소들과 관련을 맺으며 전체를 형성합니다. 그 체계에서 대립에 의해 가치(valeur)가 생깁니다.
편집의 논란
제자들이 편집하여 출간한 일반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는 저자가 소쉬르가 아니기 때문에 편집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먼저 후대의 언어학자들에게 수없이 인용된 “언어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상은 언어인데, 이는 그 자체로서, 그것만을 위해서 고찰되어야 한다(소쉬르 1990: 271).” 이 말은 사실 학생들의 노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말입니다. 즉, 두 명의 제자가 편집 중에 이 말을 첨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첨가, 삭제, 재해석 등의 문헌학적, 해석적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으므로 소쉬르를 연구할 때는 문헌학적 고찰이 필수적으로 동반됩니다. 왜냐하면 소쉬르가 학위논문으로 제출한 논문 외에 강의를 위한 자료들은 그가 강의가 끝난 후 다 파기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소쉬르는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공시적 언어연구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언어학자가 통시적 관점에서 언어를 보게 되면 이미 그것은 언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변화시킨 그 사건들을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체계의 변화는 사건 때문에 일어나지만 그 사건은 체계와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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